2009년 6월 3일 수요일

이 시대의 법치(法癡).

이 시대의 법치(法癡)


흔히 순하고 착한 사람을 ‘법 없이 살 사람’이라 말하지만

지금 세상은 단 하루라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법이 없다면 평화로운 공존질서는 무너지고 사회생활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법이 없다면 함께 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해지고 그만큼 자유공간은 좁아지게 된다.

법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같지만

실은 법에 따라 행동하면 그만큼의 자유를 보장받는 셈이다.

법을 모르거나 법에 무뎌도 살 수 없다.

일반 시민도 그렇지만 위정자는 더욱 더 그렇다.

법으로 국민을 다스리고 법이 국민을 다스리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법을 모르고 무시하면 공권력을 가장한 불법이

국민의 삶을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시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생각대로 행동하거나 표현하지도 못한다.

 

음에 대한 감각이 둔하고 음의 장단과 높낮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음치(音癡)라 부른다.

음감에 둔하고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는 사람의 노래는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다.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만 줄 뿐이다.

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법치(法癡)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는 음치처럼

법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침해되는 줄도 모르면서 권한을 남용하고 공권력을 휘두른다.

 

법을 기득권 옹호수단으로 악용

 

시민들이 민주광장에 모여 외치는 소리를 ‘떼법’으로 폄훼하고 ‘불법’으로 낙인찍는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 행사를 필벌의 대상으로 형사범죄화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법치의 원리는

법을 지배의 도구로 악용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정의와 자유를 추구하고 보장하는 법보다는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법을 우선시 한다.

경찰력 강화,

공안통치,

집회시위의 과도한 제한,

의사표현의 자유 제한,

감시와 통제 강화,

언론보도의 자유제한 등,

이것이 다 법치(法癡)의 결과요 산물이다.

 

법치(法治)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법치(法癡)의 뻔뻔함이 활개를 친다.

행정부 마음대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축소하는 결정을 내려

독립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깎아내린다.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인 병사들에게 금서목록을 정해놓고

마음대로 책을 읽지도 못하게 하는 비민주적 행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버젓이 행해진다.

이에 맞서 국민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군법무관을 파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헌법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특정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원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부처도 있다.

유죄판결이 확정된 청소년 성매수자의 신상공개가 위헌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기소조차 되지 않은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등을 수사기관의 결정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개정안은 다분히 위헌적이다.

 

행정부처의 코드 맞추기는 그렇다고 치자.

집권 여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입법부마저 제 기능을 상실하여

정의의 법인지 아니면 법이라는 탈을 쓴 악법인지 살펴보지 않은 채 통과시키려 한다.

권력분립의 원리를 망각한 입법적 다수의 횡포로 민주주의가 침식되고 있다.

입법부가 입법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정의인지를 선언해야 하는 사법부에도 법치(法癡)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재판 간섭행태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李정부 곳곳에서 뻔뻔한 法癡

 

이 정부 들어서 유난히 법치이념이 강조되고 법질서를 내세울 때 어김없이 ‘법대로’가 등장한다.

그러나 법치를 외치는 자들은 국민이 법질서를 어기는 횟수보다

자신들이 더 법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들이 외치는 법치가 다른 사람들에게 법치(法癡)로 들리는 것은 아닌지,

법을 기득권 옹호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하루 빨리 법치국가의 법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라는 절대음감(絶對音感)을 찾아 들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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