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 사례

[쿠키 사회] 지난해 11월 초 오후 6시30분쯤 서울 성북구 김모(17·고2)양의 집은 비어 있었다. 부모는 돈을 벌러 나가고 없었다. 어김없이 손님들이 찾아왔다. 김모(18)군을 비롯한 남학생 4명과 학교 친구인 박모(17)양. 평소 어울려 노는 친구들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장난’이 시작됐다.

김군은 박양의 앞머리카락을 정리해주겠다며 가위를 들었다. 10여분 만에 가위질을 멈춘 김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모양이 이상하다”며 이번에는 전동 이발기를 찾아내 전원을 켰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길고 까만 머리칼이 우수수 떨어졌다. 남학생들은 키득거렸다.

잠시 후 박양의 머리엔 별(☆) 모양과 임금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 부분만 맨살이 하얗게 드러났다. 박양은 저항했다. 남학생들은 빠져나가려는 박양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치마와 블라우스를 들추고 맨살이 드러난 몸 구석구석을 만졌다. 배와 가슴에는 수성 사인펜으로 하트(♡) 모양이나 낯뜨거운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는 “씻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박양은 남은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가발을 써야 했다.

선을 넘은 남학생들은 갈수록 짖궂어졌다. 버스 안이나 길거리에서 보란듯이 가발을 벗겼다. 가발에 침을 뱉고 머리를 툭툭 치며 놀렸다. 승객과 행인들은 수근대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박양은 지난해 12월까지 시달렸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밀은 없었다.

지난 4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들어간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 8일 남학생 4명을 모두 잡아들였다. ‘장난 아닌 장난’을 주도한 김군은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됐다.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은 “처음에는 장난이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더 심하게 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후회했다. 경찰은 이들이 그동안 별 문제를 일으킨 적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학교에 범행 사실을 조만간 통보할 방침이다.

청소년 비행은 여러 명이 어울리면서 심해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숙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청소년들은 여러 명이 있으면 누구 잘못인지 불분명해져 더 자극적인 걸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관리하고 제지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비행 정도는 심해진다”며 “청소년들이 이렇게 방치되지 않도록 부모와 학교,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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