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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2일 화요일

[스크랩] 보성 연쇄살인, 여중생 성폭행 김길태 사건

검찰, 여중생 성폭행ㆍ살인 김길태 사형구형(2보)
| 기사입력 2010-06-09 11:29 | 최종수정 2010-06-09 11:39



"반성하지 않아 정상 참작 여지 전혀 없어"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여중생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인한 혐의로 기소된 김길태(33)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그러나 김은 법정에서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검찰 구형에 불만을 나타냈다.

부산지검은 9일 오전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구남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김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제거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또 검찰은 재판부에 30년간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타인의 비난에 대해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데다 특히 여성에게 매우 적대적으로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피해자의 고통이나 유족의 슬픔을 고려할 때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거나 제거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pcs@yna.co.kr

 

 

 

 

 

 

 

‘보성 연쇄살인’ 70대 어부 ‘사형’ | 기사입력 2010-06-10 18:38  
  
여행객 4명을 연쇄 살해한 ‘보성 어부’ 오모(72)씨에게 사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10일 자신의 배에 탄 여행객 4명을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오씨의 상고심에서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를 합헌 결정한 이후 대법원이 처음으로 사형을 확정한 것이다.

오씨는 2007년 8월 전남 보성으로 여행 온 10대 남녀 2명을 배에 태운 뒤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성을 바다로 밀어 살해하고 저항하는 여성도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했다. 오씨는 그해 9월에도 자신의 배에 탄 20대 여대생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1심은 “오씨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녀 4명을 무참히 살해했고, 재범 우려가 있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오씨는 항소심 재판을 받던 중 사형제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2008년 9월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재판이 정지됐다. 헌재는 지난 2월 사형제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임성수 기자

제2 조두순 사건일지 뉴스기사

 http://news.nate.com/view/20100614n02774

■ 병원서 만난 '제2 조두순 사건' 피해자 부모애 앞에선 눈물 참고 밝게 웃으려 애써
딸 인생 망친 짐승, 살려 줄 가치 있나
나영이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동병상련

'제2 조두순 사건'을 특종 보도한 한국일보는 그간 피해자 A양 가족에 대한 취재를 자제해왔다. 심리적 불안정 등 2차 피해를 우려해서다. 하지만 A(8)양의 아버지(41)는 우리사회에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이며 여러 차례 본보 인터뷰에 응해 비극 이전 현명하고 천진난만했던 A양과 평화로웠던 가정, 이후 달라진 삶과 상처, 그리고 극복의지를 피력했다. 인터뷰는 병원 계단통로에서 했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안간힘을 내고 있었다. /편집자 주

12일 밤 우리 부녀는 병실에서 볼륨을 줄인 채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을 묵묵히 지켜봤다. 아내와 막내는 잠들었다. 골이 터져도 아이는 아무 표정 없이 담담했다. 간혹 "몇 대 몇이야"라고 물으면 아이는 "1대 0" "2대 0"이라고 짧게 답했다.

아이는 사건 발생 나흘 만인 금요일(11일) 말문을 열었다. 병원생활이 심심하다고 했다. 예전에 갖고 싶어 했던 닌텐도 게임기를 사줬다. 아이 둘이 게임을 하면서 토닥토닥 다퉜다. 그 모습이 평상시랑 똑 같은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부모보다 동생이 낫다.

딸은 살이 계속 빠진다. 몸무게가 27㎏인데, 벌써 2㎏이나 빠졌다. 밥을 먹는데 세 숟갈 먹고 다 토해낸다. 배가 부르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하루 살이 빠진다. 무섭다고 해서 형광등을 켜두는데도 밤에 잠을 못 잔다. 집에선 불 끄고 혼자 자던 애다. 새벽이면 깬다. 잠이 들도록 딸의 어깨를 주물러준다. "예전엔 (네가) 아빠 어깨랑 목 많이 주물러줬으니까 이제 아빠가 해줄게." 아이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빠로서 해준 게 거의 없다. 해외출장이 잦아서 한번도 딸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 3~4개월 외국에 나가있다가 10일 정도 국내에 쉬러 들어오는 정도다. 이번에도 5월 말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편의를 봐줘서 퇴원할 때까지 딸 곁에 있을 수 있다. 다음달이 딸의 생일이다. 그간 못한 거 한번에 다 해주고 싶다(아빠는 눈물을 참았다).

딸이 말 안 할 때가 가장 속상하다. 첫날에도 울지 않았다. 굵은 주삿바늘이 들어가는데도 자기 살이 아닌 것처럼 그냥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엔 꾀병도 부리고 엄살도 피우던 애가 하루에 몇 번씩 상처부위를 소독하는데도 아프단 얘기를 하지 않는다. 차라리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

일부러 말을 붙였다. "다 나으면 바이킹 타러 가자."(아이가 놀이공원에 가면 몇 번이고 탈 정도로 바이킹을 좋아한다) 딸이 씩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아프면 표현을 해" 했더니 며칠 지난 뒤에야 아프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멍하니 앉아있다.

정말 활달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쳤다. 가족이 있을 때 곧잘 피아노를 쳤다. 어떤 곡은 참 듣기 좋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곡 좀 쳐라"라고 하면 내가 밥 먹을 때마다 그 곡(바흐의 '미뉴에트')을 연주했다. 악보를 안 보고도 잘 쳤다. 듣기가 참 좋았다. 듣고 싶다.

수술하던 날은 분노가 치밀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전날에도 멀쩡하던 애가….' 범인을 죽이고 싶었다. 관련 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어디를 만지면 몇 년, 특정 부위를 만지면 몇 년, 이런 식이더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아이의 인생을 망친 짐승이 살 가치가 있나. 최소한 무기징역, 최고 사형을 줘야 한다.

그래도 아이 앞에선 밝게 웃으려고 노력한다. 심리학 선생님이 와서 "부모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 부모가 절망하거나 분노하면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그리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딸 앞에선 수다스럽게,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는다. 아내랑 밥을 먹다가 갑자기 둘이 그냥 운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아이 앞에선 울지 않는다.

12일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가명)이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찾아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딸의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 13일 오후에 30분 정도 만났다.

딸이 배가 아프다고 했더니 나영이 아버지가 한약을 선물했다. 나영이도 배가 아팠는데 병원 약이 잘 안 들어서 지어 먹이던 것이라고 했다. 조기치료 및 심리치료의 중요성도 조언했다. 나영이는 조기에 치료를 잘 받아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 성격도 밝아졌다고 했다. 나영이는 올해 한번 더 수술을 받으면 인공항문을 뗀단다.

나영이 아버지도 부모의 안정을 강조했다. 밝게 웃으라고, 자신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나영이가 자신이 선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딸에게 주고 싶다고 했단다. 다음에 만날 때 받기로 했다. 범인들은 죽일 놈이라고 공감했다. 동병상련을 느꼈다.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 하면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물을 참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 "(이런 걸 당할) 아이가 아닌데"라며 죄송해 했다. 학교 친구들은 오지 말도록 했다. 퇴원하고 나서 만나게 하고 싶다. 하지만 퇴원 뒤에도 학교는 못 갈 것 같다. 허리 옆에 인공항문을 끼고 어떻게 학교를 가겠나.

다행히 성기능엔 장애가 없다고 하더라. 수술을 2번 정도 더 받은 뒤 한달 정도 병원에 있어야 하고, 퇴원 뒤에도 6개월 정도는 통원치료를 해야 한단다. 몸이 좀 나으면 심리치료를 할 생각이다. 아이가 다 잊고 옛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모두.

13일 오전 A양은 처음으로 침대에서 나와 손수 휠체어를 타고 병실 안을 서성거렸다. 동생과 옥신각신 대화도 나눴다. 아빠는 책을 읽어줬다. 엄마는 곁에 앉았다. 일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단란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창문을 통해 밝은 빛이 스며들었다.

아직 A양은 병실 문 쪽을 바라보지 못한다. 낯선 이가 오면 몸이 굳는다. 다른 병실 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A양의 병실은 패트병 지름만큼만 열려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리는 날 A양은 "집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할 일이 참 많다. 아버지에게 피아노도 들려줘야 하고, 상을 여러 번 탄 그림도 그려야 하고, 가고 싶은 수영장에도 가야 한다. A양이 병실에서 물감으로 그린 그림엔 녹색 풀과 파란 구름이 넘실거리고 밤색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김현우기자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헌재 사형제 합헌 판결] 사형제 폐지에 대해

"사형제 합헌 결정" 시발 이번학기 또 사형제 과제 겁나 내겠구만?

 

죽일 놈은 죽여야 한다. 쳐 맞아도 안듣는 놈도 죽여야 마땅하고, 인간의 거죽을 덧발라 사는 짐승들도 죽여야 한다. 하지만 살다보니 문제해결에 있어 필요한 정의나 정답을 옳게 판단하기 힘든 것이 세상살이이고, 감정적인 부분에 치우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또 다른 침해를 만들기 마련이다. 조선시대처럼 부모의 원수를 자식이 되갚는 것이 어느정도 인정되었던, 그것이 시대에 통용시되는 하나의 법감정이었다면 - 복잡한 현대에는 그에 걸맞는 법감정이 통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내 헌법에 보장되어진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기본적으로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갖는다.

 

범죄자 역시 사람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 악한 사람이 있고 선한 사람의 구분은 있어도, 생명이 값싼 사람과 값비싼 사람의 구분은 없다. 생명에 값을 매길 수 없고 그 경중을 정할 수 없듯이 -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는 모두가 가지는 절대적인 것이다. 또한 인간은 습득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기에 고쳐질 수 있는 동물이다. 고쳐질 수 인간이기에 교정을 통한 재인간화 재사회화의 기회를 주는건 국가가 해당 국민(범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인권 보장의 연장선이며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이행하는 방법이다. 꼭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동등한 인간이 같은 인간의 생명권에 대해 잣대를 휘두르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닌가.

 

내 식 표현으로 까놓고 말해보자면, 사형으로 곱게 죽여봐야 국가 입장에서는 전혀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하나의 생명에서 평생동안 얻어낼 수 있는 노동력의 가치가 몇십억이라던데, 국민들 혈세 써가며 교도소에서 밥 맥여주고 옷 입혀주고 재워주고 마지막까지 곱게 죽여주는건 안될 말이다. 사형을 할 바에는 무기징역으로 평생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자신이 일으킨 범죄에 대해 속죄하고 반성하며 그 피해를 사회에 영구적인 노동력으로서 환원시켜야 한다. 범죄자 하나를 잡기 위해 들인 수 많은 돈을 - 노동력의 환원이라는 방법으로서 땜빵해야 맞지 않는가. 국민들이 범죄자 따뜻하게 입혀주고 먹여주라고 세금 내는게 아니니까.

 

 

 

<-기사 펌->

 

이강국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5명은 “범죄 예방을 통한 국민의 생명 보호 등의 공익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생명권 박탈이라는 사익(私益)보다 작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은 정반대의 법리를 내세웠다.

“사형제도는 생명권을 침해하므로 위헌”(김종대), “사형제는 추구하는 공익보다 생명 박탈로 인한 사익이 크고 범죄 예방의 실효성도 없다”(목영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위배된다”(김희옥)는 등의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다. 조대현 재판관은 “사형제는 헌법 110조4항을 제외한 상황에 적용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110조4항은 “비상계엄하에서 간첩죄에 대한 군사재판은 단심으로 하되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면 그렇지 않다”고 규정했다.

합헌 의견을 낸 민형기·송두환 재판관도 “사형제 폐지는 위헌 법률 심사가 아닌 시대상황의 변천을 반영해 국민의 선택을 통해 입법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헌재 관계자는 “두 재판관도 사형제가 위헌은 아니지만 폐지 또는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책적 결단으로 개선해야”=우리나라에서 사형제가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심사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96년 헌법소원 때도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7대 2로 합헌 의견이 월등히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14년 만에 사형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번 판결의 또 하나의 의미는 헌재가 정책적 입법 또는 결단을 조언했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1981년에 사형제 폐지를 밀어붙여 통과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 사형제 존치론자 측에서는 국민 여론을 강조하고 있지만 폐지론을 펴는 국제 앰네스티 등은 프랑스의 예를 들어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사형제도 존폐론에 대한 주장

조두순사건, 사형수 정남규 자살로 사형제 존폐론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가장 문제시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생명권'에 관한 부분인데, 흉악범의 생명권을 국가가 뺏는게 정당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개인적으로는 정당하다 생각하나… 일반적인 우리 내 법 감정에서 오는 감정적인 판단, 즉 '눈에눈 눈, 이에는 이' 식의 구시대적 응보형주의를 벗어난 현대에 추구하는 과학적인 법 감정으로서 범죄자는 죽여야 하는 하등동물이나 짐승이 아니라 교정, 교화를 통해 재사회화하여 죄값을 사회에 다시 환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게 나름의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형제는 참 수십년에 걸쳐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난제 중 난제라 생각하는데, 이번에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존폐와 관련하여 곧 판결이 나온다니… 오랫동안 수험생들을 괴롭힌 이 난제가 어떤식으로는 마무리되길 빈다.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어느 교도관의 첫 사형집행기. 영화 '집행자' 예고편.


 


 

 

어느 교도관의 첫 사형집행기 (집행자) | 오늘 출근하면 3명을 죽여야 한다

 

고시원 생활 3년, 백수 재경(윤계상)은 드디어 교도관으로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첫날부터 짓궂은 재소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되는 재경. 어리버리한 그에게 10년 차 교사 종호(조재현)는 "짐승은 강한 놈에게 덤비지 않는 법"이라며 재소자를 다루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간다. 재소자들에 군림하는 종호나 사형수와 정겹게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의 모습 모두 재경의 눈에는 낯설기만 하다.

어느 날, 서울교도소는 일대 파란이 인다. 지난 12년간 중지됐던 사형집행이 연쇄살인범 장용두 사건을 계기로 되살아 난 것. 법무부의 사형집행명령서가 전달되고 교도관들은 패닉상태로 빠져든다. 사형은 법의 집행일 뿐이라 주장하는 종호는 자발적으로 나서지만 모든 교도관들이 갖은 핑계를 대며 집행조에 뽑히지 않으려는 사이... 사형수 장용두는 자살을 기도하고, 유일하게 사형집행 경험을 가진 김교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2009년 어느 날, 가로 2미터, 세로 4미터의 직사각형방. 그 곳으로 사형집행을 위해 되살려진 장용두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칠순의 사형수 성환. 그리고 교도관 재경, 종호, 김교위가 한자리에 모였다. 마침내 사형집행의 순간, 사형수들의 얼굴 위로 하얀 천이 씌어지자 묶인 두 발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도관들의 마음도 죽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형법 제41조의 '형벌의 종류'에 '사형'이 있는 나라이지만 잠정적으로는 50년 넘게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사형폐지국이다. 제도는 있으나 시행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인지 중딩때부터 했었던 '사형제 찬반토론'을 대학에 와서도 똑같이 우려먹고 있더라. 무튼 세계 추세가 사형폐지로 돌아서고 있고, 인권에 대한 의식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으므로,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사형폐지국으로서 한걸음 걸어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의 영화 '집행자'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강동원,이나영]'과 더불어 교도소, 교도관과 관련된 영화라 개인적으로 기대도 많이 되고 좋은 작품이길 빌며 개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내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대학에 다니며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되면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에서라도 꼭 보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근데 막상 예고편을 보니 너무 수형자의 인권쪽에 치중하지 않았나, 너무 감성적인 것만 보여주려고 한게 아닌가 싶어 기분이 께림칙하다. 난 대놓고 사람 울리려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지라... 설마 영화 제목 '집행자'라고 해놓고 '집행에 대한 시각'이런 얘기는 쏙 빼고 '가족'이라던가 '사랑'을 얘기하며 끝나지는 않으리라고 믿고 있으나 영화 시놉도 그렇고 왠지 집행에 대한 잣대를 마련하기보다는 그저 닥치고 '인간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여요'하면서 끝날 것 같아 기분이 뷁스럽긴 하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정도로만 명작이 나와주면 바랄게 없을텐데.

 

11월 3일 개봉이라고 하던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심야로라도 꼭 보려고 하고 있다. 영화 보고 나면 뒷풀이 이야기는 꼭 블로그에 옮기겠다며.

 

 

 

2009년 6월 3일 수요일

체사레 벡카리아 <범죄와 형벌> 중 사형에 관하여.

형법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체사레 벡카리아의 저서인 <범죄와 형벌>에 대해 레포트를 쓰고 있습니다.

벡카리아의 사상이 경찰행정학과나 교정보호학과의 뿌리가 된다는 점에서, 덕분에 과젯거리가 수없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벡카리아는 저나 제 동기들에게는 애증의 인물이곤 합니다.

 

<범죄와 형벌>이라는 제목 자체로도 충분히 거부감이 들 수 있으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하는 책입니다.

제가 어지간히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거나 그러진 않는데[본인도 책을 잘 안읽기 때문에] 이 책은 추천 별 백만개.

 

 

 

덧붙여 업어 온 글을 풀자면,

 

인간은 무슨 권리로 그의 이웃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고 싶은 자가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각자가 가진 자유의 최소한의 희생 가운데 무엇보다 큰 생명의 희생이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만일 이 점을 긍정한다면 자살을 금지하는 다른 원칙과는 어떻게 조회될 수 있을까.

인간이 자기 생명을 마음대로 죽일 권리가 없는 이상, 그 권리를 타인이나 사회에 양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사형은 어떤 의미에서도 권리가 될 수 없다.

역사는 사형이 악인들의 사회를 침해하는 것을 결코 예방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멋진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책. 젊은 이상주의자의 영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에요.

한권의 책을 통해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안겨 준 책이기도 하구요.

 

<범죄와 형벌>을 읽기 전만 해도 전 어린이 유괴살해범이나 어린이 성폭행범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참혼학 형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기를 바랬구요. 하지만 범죄와 형벌은 그런 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전 사형 반대론자가 되었어요. 물론 유괴범을 변명해주게 된 것은 절대 아니에요. 단지 국가나 사회가 개인을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범죄와 형벌은 딱딱한 제목에 비한다면 내용은 어렵지 않아요. 법학개론 강의 들은 게 전부인 제가 쉽게 읽었으니까요. 쉽고 얇다는 것을 이 책의 미덕중 하나로 꼽고 싶어요. 하지만 이 작은 책은 죄형법정주의와 특히 사형제 폐지의 논의를 불러일으킨 커다란 의미를 지닌 고전입니다. 감정적인 사형반대가 아니라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사형폐지론을 주장하셨죠.

 

저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들을 뉴스에서 대할 때면 조합이라도 결성해서 킬러를 고용하고픈 생각마저 해요. 그러면서 사형제도를 반대하니 조금 모순일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요?

 

흉악한 범죄자는 당연히 죽여도 된다라는 가치를 갖고 있는 사회와,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절대 안 된다는 가치를 갖고 있는 사회중에서 어느 쪽이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인가? 이 관점에서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흔히 사형폐지론자들을 오해하시는 부분이 "왜 사람의 생명을 해친 극악한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사실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가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국민, 예를 들어 내 생명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것에 내가 동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저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저에게 동의할 권리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더 나아가 국가가 나의 친구를, 내가 아는 사람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느 것을 인정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 단호하게 "아뇨"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극악무도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죽여도 좋습니다"라고 조건을 달아서 찬성할 수 없어요. 절대로 안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자발적으로 조국을 위해 제 생명을 희생하거나 헌신할 수는 있을 거에요. 그 가치에는 백번 동의해요. 그러나 "국가는 몇몇 특정한 경우에 국민을 죽일 권리를 가진다"에는 찬성할 수 없어요.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체사레 벡카리아 <범죄와 형벌>, http://blog.naver.com/anec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