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인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인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다문화와 단일민족.

코시안이란 단어가 있다. 코시안이란 코리안(Korean)+아시안(asian)의 합성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2세를 뜻한다. 왜 이런 말이 나온 걸까? 한국전쟁이후 참전 군인 또, 그후 주한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수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2006년 미국 풋볼 MVP 하인스 워드를 매스컴에서는 연일 우리 대표 선수의 수상처럼 흥분되어 보도하였다.

 

그전까지 흔한말로 튀기라 칭하던 그에게 존경심을 표현하고 재단 설립까지 이례 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은 풋볼이 어떤 스포츠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결과론적으로 그가 어떤 삶을 거쳐왔냐는 것은 잠시의 휴먼다큐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비율은 10% 이상이 되었다.

 

교과서에서 반만년 단일민족국가, 한민족, 우랄알라이계, 북방계, 기마민족등으로 교육 받아 왔다. 그러나 실제 인종학을 연구한 많은 학자는 우리민족의 기원을 북방계와 남방계의 혼혈로 보고 있는 설이 대세이다.

 

그것은 과거보다 발달한 DNA 검사 결과를 과학적으로 바탕하고 있기에 신뢰도가 높다. 고구려 시대와 몽고 침입 시대 그리고 호란과 왜란을 통하여 DNA의 유입과정이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DNA 외출과정도 만만치 않다. 당, 송 시대의 중국 역사에 면면에 기록되어 있을 뿐아니라 후금과 청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민족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의 역사, 중국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 하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동북공정 - 정식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 을 통하여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만들고 있다.

 

중국의 어느 연구에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족의 유전적 DNA를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즉, 유전적 입장에서 지금의 한족을 설명하기보다 문화적 차원에서의 한족을 입증하기에 이른다는 말이다.

 

조선족을 이제 재중동포라 한다. 100여년동안 재중동포. 고려인등은 우리의 문화를 잊지 않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많은 부분이 현지애 동화되어 현지화는 되었으나, 그들은 우리 민족이다. 피가 섞여도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뿌리이다.

 

코시안들이 우리의 학교를 다니며 우리의 문화를 받아들이면 그들을 계속 코시안, 혼혈, 다문화 가족이라 할 것인가. 우리는 계속된 단일 민족 국가를 외치며 문화의 폐쇄성을 비논리적으로 외쳐댈 것인가? 백인이 옆에 있을 경우는 "would you like coffee?" 동남아시아인이 옆에 있을 경우 "한달에 너 얼마버니?" 이런 우스개의 농담이 우리의 현실이다.

 

안산은 다문아특구, 외국인 지연센터 등 각종 다문화 사업 및 중앙정부의 법률적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의 지원은 절대적이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단, 그러기 위해 우리의 의식과 관념의 차이를 깨트릴 수 있는 교육적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계속해서 지원하려 애쓰고, 일부에서는 그들을 동정하며 봉사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그 들과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되어 문화를 새롭게 변화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들도 이제 대한민국에서 세금을 내며 살아가며, 시민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문화를 수용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문화의 성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바이다.

2009년 10월 5일 월요일

'나영이사건'을 통해 본 범죄자의 인권 존중에 대해..

 

인권이라는 것을 한정짓는다는 것 자체가, 인권에 어떤 한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어떠한 권리로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사형제도 존폐론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범죄자의 인권 역시 지켜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생각이 됩니다.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죄없는 사람들도 죄인이 되고 우리 내 7~80년도에 개나소나 빨갱이로 몰아서 수 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처럼, 또한 교도소 내 수많은 악행들이 묵인되어 또 다른 음지의 범죄를 만들어낼 수 있듯이, 인권 자체를 지킬 필요가 없다 부정하는건 위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허나, 수십 수백명에게 참혹한 피해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 때문에 개나소나 인권을 주어서도 안된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저는 인권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현재 형법 형량 때리는 것 자체를 좀 고쳐야 하는게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처럼 범죄자(수형자)에게 국가가 피해자/수형자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마련하여 최대한의 인권을 보장하면서 형벌은 100년 200년 때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권이 보장되야 하는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수형자를 교도소에서 사회로 빨리 복귀하는것만이 인권보장은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교도소 안에서 죄값 치루면서 충분히 인격적인 대우 하면서 교정, 교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선과제로 형법 개정도 필요하겠고, 가장 중요한건 전문적인 교정 인력을 투입해서 범죄자의 재사회화와 바른 인권 선도에 압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저처럼 정도교정인으로서 전문지식을 받고 있는 유경험자에게 교정직 공무원 가산점을... 아니면 특채라도...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인권영화 세번째 시선이 없어!

 

현대사윤리 시간에 짤막짤막 보고 있는 인권위에서 만든 영화 '세번째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해보고자 요즘 이곳저곳에서 소장영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내가 이용하는 P2P에는 인권위 관련 영화가 한개도 없기에...OTL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인권영화 시리즈 중 첫번째였던 '여섯개의 시선'을 봤었는데, 당시의 그 영화를 보고서 느꼈던 그 느낌은 장난 아니었드랜다. 정말 이런사람들도 나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산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나는 저런 영화에 보이는 타인과 같은 행동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겠다고 반성할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인권위에서는 그 이후에도 '다섯개의 시선' 과 '별별시선들'에 이어 '세번째 시선'까지 나왔다던데, 이번에 2MB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에서 인권위에 지원금을 폭삭 줄여버리는 마당에 더이상 영화 제작은 불가능하다고. 아무튼 쥐새끼 이양반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얼른 구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겠다며.